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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다리’ 칠곡 왜관철교
2016년 06월 25일 (토) 22:20:13 전경석 기자 jinha02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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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왜관 호국의다리

왜관 호국의 다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역사적 교훈이 담긴 철교다.

지난 1901년 조선을 유린하기 시작한 일본은 대륙침략을 위해 부산-서울을 잇는 군용철도부설작업에 들어가 1905445의 단선철도를 완공했다.

호국의 다리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1941년 경부선 복선화과정에서 인접한 곳에 새로운 복선철교가 가설되면서 철교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사람과 차량이 다니는 보차도로 전환됐다.

특히 한국전쟁당시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위해 195083일 중앙부분을 폭파시켜 처음으로 다리가 끊어졌다.

당시 미제1기병 사단장 게이소장은 호국의 다리와 복선철교를 폭파한 뒤 반격준비에 나서 약 2주일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시키고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에 있던 칠곡군 왜관전투와 다부동전투로 한국과 유엔군이 반격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으며, 이후 칠곡이 호국의 고장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연합군의 반격과정에서 긴급복구된 뒤 197911월 인도교로 사용하다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전면통행금지조치와 함께 철도청에 의해 철거까지 검토됐다.

하지만 호국의 상흔을 간직한 이 다리를 보존하자는 칠곡군민들의 요구에 따라 도비와 군비 61천만원을 들여 교각 1기 신설 등 복구작업을 펼친 끝에 1993년 다시 인도교로 개통하면서 '호국의 다리'로 이름붙여졌다.

호국의 다리는 한국전쟁당시 폭파됐던 63m구간은 트러스없이 상판만 복구해 전쟁의 상흔을 되살릴 수 있도록 했으며, 2008101일 등록문화재 406호로 지정해 역사적 유물로 관리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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