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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느리게 사는 즐거움
2017년 03월 01일 (수) 20:18:00 박남근 기자 nku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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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즐거움

- 속도가 느린 것이 건강하다 -
   
진점규(교육타임즈 폅집국장)

 

  느리게 산다는 것은 삶 속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유 있는 마음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일이 많고 적음에 별관계가 없다. 일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쉽게 말하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하느냐에 달려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른 것과는 다르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삶 속에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갈 때 관조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고 사색하는 삶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른데서 비롯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을 덮고 있는 조급함과 피곤함을 털어버릴 수 없다면 행복을 채울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보면 내남없이 바쁘게 산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눈도 뜨기 전에 씻기 시작하고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이 줄곧 출근 준비를 시작해서 지하철역으로 뜀박질한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하루가 시작된다. 지하철 안에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일터에서 일을 하고 하루를 마감하고 또 아침이 되면 개미쳇바퀴 돌 듯 일상은 반복된다.

현대인들의 매커니즘적 삶은 중독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중독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고 병들게 한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모두가 경쟁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남보다 먼저 출세하고 싶고, 승진도 빨리해서 연봉도 높이고 싶고, 남보다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 살고 싶고, 고급승용차를 갖고 싶고, 외국여행도 가고 싶다 등등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어쩜 인간의 욕심은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러다가 인생의 종착역에 와서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해 본들 그때는 이미 때가 늦다.

오래전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작품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현대인의 삶과 너무도 흡사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바흠이라는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그의 평생소원은 자신 소유의 땅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자신이 소유한 땅을 내놓았다. 그러자 바흠은 자신이 저축한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계약금을 치렀다. 농사가 잘 되어 1년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게 됐다. 드디어 그토록 소원하던 땅 주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그러나 다른 농부들의 가축이 땅을 침범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등 잡음이 생기자 바흠은 땅이 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풍년이 되는 비옥하고 넓은 땅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재산을 팔아 고향을 떠나 이주했다. 그가 가진 땅은 이전의 세배가 됐고 살림은 그전보다 열 배나 나아졌다. 차차 생활이 안정되고 살림이 불어나자 이곳 역시 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분양받아 농사를 짓기보다 영원한 자기 땅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적은 돈으로 일 년이 걸려도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땅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곳은 바스키르 원주민들이 사는 땅이었다. 듣던 대로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땅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땅을 얻는 방법도 간단했다. 동트기 직전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시하고 해가 지기 전에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표기한 모든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바흠은 동이 트기를 기다려 출발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땅을 괭이로 표시하며 걸었다. 가면 갈수록 비옥한 옥토가 펼쳐졌다. 그는 몸에 지니고 있는 거추장한 것 신발조차도 벗고 금을 긋기 시작했다. 한참을 금을 긋고 뒤를 돌아보니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는 출발점을 향하여 힘껏 달렸다. 숨이 차서 땅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언덕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통을 참고 계속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극적으로 시작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흠은 피를 토하며 쓰려지고 말았다. 촌장이 그를 일으켜 세웠지만 그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촌장은 예상이라도 하였다는 듯 하인을 시켜 바흠의 몸집만큼 땅을 파기 시작했다. 70제곱 센치미터... 이것이 고작 그가 가져갈 수 있는 땅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말미에 촌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인간에게는 한 평 남짓한 땅만 있으면 충분한데 바흠 너는 너무 욕심이 많구나...’

톨스토이는 시골 농부 바흠의 모습을 통해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나는 바흠처럼 살고 있지 않는가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삶 속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늘 분주하고 바쁜 것 같지만 실상 얻어지는 결과는 신통치 않다. 반면에 여유 있게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유 있게 마음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은 일이 많고 적음에 별관계가 없다. 일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쉽게 말하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하느냐에 달려있다.

현대인에게 여유를 찾는 것은 삶의 과속 또는 지나친 저속상태에서 벗어나 삶의 경제속도를 되찾는 일이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 세상을 두루 볼 수 없으며 창의적으로 일할 수 없다. 여유란 일을 늦추고 일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대한 생산성을 극대화 하는 일이다라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느림의 미학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삶의 여유를 갖는 순간부터 우리는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려면 우선 다양한 삶을 체험하는 게 좋다. 또는 새로운 것을 많이 볼수록 좋다. 사람은 낯선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관념은 마음의 여유로움을 저해하는 방해물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철학이 있는 삶을 의미한다. 그 철학은 사색을 통해서 얻어지는 마음의 황금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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