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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지]남원 광한루원
2019년 09월 17일 (화) 06:09:16 전경석 기자 jinha02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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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원은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더불어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보물 제 281)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천거동)

 규모 : 241.81본루 : 정면5, 측면4칸 팔작지붕 루 마루집

익루 : 정면3, 측면3

월랑 : 정면1, 측면3

이 건물은 조선조 초기의 재상이었던 1419년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용성지(龍城誌)'고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626년 당시 남원부사인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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